4. 임진왜란에서 배운 전쟁의 법칙 [先期遠布 선기원포]
先 먼저 선, 期 기약할 기, 遠 멀 원, 布 펼 포
임진왜란의 류성룡과 ‘미리 알아야 산다’ 작전
1594년, 조선(朝鮮)의 명재상(名宰相) 류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의 한복판에서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라는 전쟁 필살 비법서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혼란에 빠진 조선(朝鮮)은 전투에서 매번 큰소리만 뻥뻥 치다가 졌고, 류성룡(柳成龍)은 이를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방책 열 가지를 정리한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적의 동태를 미리 파악해 선제 대응을 하는 것, 즉 “첩보(諜報)!”였습니다.
류성룡(柳成龍)은 척후(斥候)와 요망(瞭望)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적어도 전투 5일 전, 적진 200리 밖까지 척후를 보내야 적의 동정을 손금 보듯이 파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성룡(柳成龍)은 만약 이걸 안 하면 “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연못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시력이 나쁜데 안경도 안 끼고 운전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거죠.
하지만 류성룡(柳成龍)의 이 똑똑한 조언(助言)을 무시한 몇몇 장수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일(李鎰)과 신립(申砬)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뻘짓을 했는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 “적이 코앞인데도… 몰랐다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순변사 이일(巡邊使 李鎰)이 상주(尙州)를 지킬 때 일이었습니다. 적군이 상주(尙州) 코앞까지 왔는데도 이일은 까맣게 몰랐죠. 한 백성이 개령현(開寧縣)에서 달려와 “적이 바로 코앞입니다!” 라고 외치니, 이일(李鎰)은 화가 나서 그 백성을 “군대 동요죄”로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백성은 목숨을 걸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일 아침에 적이 안 오면 그때 내 목을 베어도 늦지 않소!” 그러나 이일(李鎰)은 그 말을 흘려들었고, 결과는? 다음 날, 적이 도착했고 이일(李鎰)의 군대는 궤멸(潰滅)당했습니다. 참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이 코앞까지 왔는데도 첩보(諜報)를 무시하면 그 뒷감당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준 사례였죠.
두 번째 주인공: “장군이시여, 저기 적이!”
다음은 신립(申砬)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4월 26일, 신립(申砬)이 충주(忠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적은 조령(鳥嶺)을 넘어오고 있었죠. 한 군관이 적의 상황을 보고하자 신립(申砬)은 화를 내며 “군대를 미혹하게 한다”며 그 군관의 목을 베고 말았습니다. 신립(申砬)은 “내 앞에선 이런 말 하지 마라!” 하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4월 28일에도 또 다른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적이 상주(尙州)를 떠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지만 신립(申砬)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적은 6~7리 밖에 이미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탄금대(彈琴臺) 전투에서 신립(申砬)의 군대는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신립(申砬)은 적이 저 멀리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코앞에 있던 겁니다. “세상에 적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것 같네요.
류성룡의 교훈: “미리 알아야 산다”
류성룡(柳成龍)은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는 걸 보고 답답함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홉 조목을 더 추가해서 〈전수기의십책(戰守機宜十策)〉을 왕에게 올렸습니다. 훗날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이 글을 보고 감탄하며 자신의 저서 《아방비어고(我邦備禦考)》에 넣었습니다. 류성룡(柳成龍)은 이렇게 말했죠. “앞 수레가 부서진 줄 알면서도 바퀴를 고칠 줄 모른다면, 뒤에 오는 수레도 똑같이 부서진다.” (夫知前車之旣敗, 而尙不知改轍, 則是固覆敗之道也. 부지전거지기패, 이상부지개철, 즉시고복패지도야)
쉽게 말해,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면 진짜 바보”라는 겁니다. 남의 실수를 보고도 배우지 않으면 결국 그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하게 된다는 진리였죠.
마무리 교훈: 척후를 믿고 준비하라!
결국, 류성룡(柳成龍)의 핵심 교훈은 하나입니다. “미리 보고 멀리 보라!” 적의 동향을 먼저 파악하고, “선기(先期)”와 “원포(遠布)”, 즉 미리 준비하고, 멀리 퍼져라는 것입니다. 전투에 앞서 적어도 5일 전에는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 복병(伏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일(李鎰)과 신립(申砬) 같은 장수들이 목을 베는 식의 무대포 전술로 인해 조선(朝鮮)은 초반에 많은 패배를 겪었습니다.
다시 말해, 류성룡(柳成龍)이 한마디로 요약한 전략(戰略)은 “멍청하게 눈앞의 정보도 무시하지 마라!”입니다. 현대에도 이 교훈(敎訓)은 여전히 통하는 법이죠. 척후(斥候)와 요망(瞭望)의 중요성은 전쟁에서도, 일상에서도, 모든 상황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전략입니다.
*戰守機宜十條(전수기의십조)
① 척후(斥候) : 적정의 탐색·정보 수집, 매복을 통해 적의 내습에 대해 사전 준비를 해야 함을 말한 것.
② 장단(長短) : 우리와 왜의 장단점을 분석한 것.
③ 속오(束伍) : 명나라의 병서 紀効新書의 내용을 본보기로 하여 군대 편제의 개편을 제시한 것.
④ 약속(約束) : 실전에서 군사를 배치하고 전투할 때 약속을 자세히 마련하고, 그 약속을 철저히 이행해야 함을 말한 것.
⑤ 중호(重壕) : 동래성과 진주성 함락을 교훈삼아 성밖에 이중으로 호를 파서 왜적에 대처해야 함을 말한 것.
⑥ 설책(設柵) : 목책을 이용한 축성 방법의 개선을 제의한 것.
⑦ 수탄(守灘) : 강과 같은 큰 내를 이용한 수비 방법으로 적이 건널만한 지점에 인공방어 장치의 설치를 제안한 것.
⑧ 수성(守城) : 목책으로 만든 성에 砲樓를 설치, 대포를 사용할 것을 제의한 것.
⑨ 질사(迭射) : 활을 쏠 때 조를 편성해 연속 사격함으로써, 일시에 쏠 때 생기는 공백을 없애도록 할 것을 제안한 것.
⑩ 통론형세(通論形勢) : 왜적을 패망시키기 위한 총론적 제안, 특히 식량보급 차단을 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