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나관중/제3권 삼국지연의 나관중

제29회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참하고 푸른 눈의 젊은이가 강동을 물려받다.

진현서당 2024. 9. 29. 04:48

第二十九回

小霸王怒斬於吉 碧眼兒坐領江東三國志演義

 

29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참하고 푸른 눈의 젊은이가 강동을 물려받다.

 

 

卻說孫策自霸江東兵精糧足建安四年襲取廬江敗劉勳使虞翻馳檄豫章豫章太守華歆投降自此聲勢大振乃遣張紘往許昌上表獻捷曹操知孫策強盛歎曰獅兒難與爭鋒也遂以曹仁之女許配孫策幼弟孫匡兩家結婚留張紘在許昌孫策求爲大司馬曹操不許策恨之常有襲許都之心於是吳郡太守許貢乃暗遣使赴許都上書於曹操其略曰孫策驍勇與項籍相似朝廷宜外示榮寵召還京師不可使居外鎮以爲後患

 

각설, 손책이 스스로 강동을 제패하여 병력이 정예하고 식량이 넉넉했다. 건안 4년에 여강을 습격하여 유훈을 패퇴시켰다. 우번을 시켜 예장에 격문을 보내니 예장 태수 화흠이 투항했다. 이로부터 위세를 크게 떨쳐서 장굉을 허창으로 보내어 표를 올려 승첩을 아뢰었다. 조조가 손책의 강성함을 알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사자 같은 젊은이와 싸우기 어렵겠구나!”

 

하고, 마침내 조인의 딸을 손책의 어린 아우 손광에게 시집보내어 양가의 혼인을 맺게 했다. (조조는) 장굉을 허창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손책이 대사마 벼슬을 원했으나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손책이 이를 원망하여 늘 허도를 습격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이에 오군 태수 허공이 몰래 허도에 사람을 보내어 조조에게 글을 바쳤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손책이 용맹하여 항적(항우)과 닮았습니다. 조정에서 겉으로 매우 후대해서 서울로 불러들이십시오. 지방에 머물게 해서 후환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使者齎書渡江被防江將士所獲解赴孫策處策觀書大怒斬其使遣人假意請許貢議事貢至策出書示之叱曰汝欲送我於死地耶命武士絞殺之貢家屬皆逃散有家客三人欲爲許貢報仇恨無其便一日孫策引軍會獵於丹徒之西山趕起一大鹿策縱馬上山逐之正趕之間只見樹林之內有三個人持槍帶弓而立

 

사자가 글을 가지고 강을 건너다가 강을 지키던 장사에게 잡혀서 손책의 처소로 압송되었다. 손책이 글을 읽어보고 크게 노하여 사자를 참했다. 사람을 보내어 짐짓 의논할 게 있다고 허공을 불렀다. 허공이 도착하니 손책이 글을 꺼내 보이고 꾸짖기를,

 

네가 나를 죽을 곳으로 보내려고 하느냐!”

 

하고, 무사들에게 명하여 목졸라 죽였다. 허공의 식구들이 모두 달아나 흩어졌다. 허공의 식객 세 사람이 허공의 복수를 꾀하나 방법이 없어 한스러웠다. 하루는 손책이 군사들을 이끌고 단도의 서쪽 산에서 사냥을 했다. 큰 사슴을 쫓아서 손책이 말을 달려 산을 올라 뒤쫓았다. 뒤쫓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세 사람이 창과 활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策勒馬問曰汝等何人答曰乃韓當軍士也在此射鹿策方舉轡欲行一人拈槍望策左腿便刺策大驚急取佩劍從馬上砍去劍刃忽墜止存劍靶在手一人早拈弓搭箭射來正中孫策面頰策就拔面上箭取弓回射放箭之人應弦而倒那二人舉槍向孫策亂搠大叫曰我等是許貢家客特來爲主人報仇策別無器械只以弓拒之且拒且走二人死戰不退策身被數槍馬亦帶傷

 

손책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묻기를,

 

너희는 누구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한당의 군사들입니다. 여기서 사슴을 쏘겠습니다.”

 

했다. 손책이 막 말을 몰아 가려는데 한 사람이 창으로 손책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손책이 크게 놀라 급히 말위에서 검으로 베어버리려고 했으나 칼날이 갑자기 빠져서 칼자루만 손에 쥐였다. 한 사람이 재빨리 화살을 쏴 손책의 뺨을 명중시켰다. 손책이 바로 화살을 뽑고 활을 집어 들어 그 사람에게 활을 쏴서 활시위 소리와 함께 쓰러뜨렸다. 다른 두 사람이 창을 치켜들어 손책을 마구 찔러오며 크게 외치기를,

 

우리는 허공의 식객들이다. 주인의 복수를 하러 왔을 뿐이다!”

 

했다. 손책이 별다른 무기가 없어 오로지 활을 휘둘러 막아가며 달아나려고 했다. 두 사람이 죽기살기로 물러나지 않았다. 손책의 몸에도 몇군데 찔리고 말도 부상을 당했다.

 

正危急之時程普引數人至孫策大叫殺賊程普引衆齊上將許貢家客砍爲肉泥看孫策時血流滿面被傷至重乃以刀割袍裹其傷處救回吳會養病

 

이렇게 위급한 때에 정보가 몇 사람을 이끌고 이르렀다. 손책이 크게 외치기를,

 

도적들을 죽여라!”

 

라고 하니, 정보가 사람들을 이끌고 일제히 올라와 허공의 식객들을 난자했다. 손책을 살펴보니 온 얼굴에 피가 흘러 상처가 심각했다. 옷을 잘라서 상처를 싸매고, 구하여 오회(오나라 서울)로 돌아가 치료했다.

 

後人有詩贊許家三客曰

 

孫郎智勇冠江湄

射獵山中受困危

許客三人能死義

殺身豫讓未爲奇

 

훗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허공의 세 식객을 찬양하기를,

 

손랑의 지혜와 용맹 강가에 가득하나,

산속에서 사냥하다가 위기를 만났구나.

허공의 식객 세사람이 의리에 죽어,

옛날 예양의 살신도 놀랍지 않네.”

 

라고 했다.

 

卻說孫策受傷而回使人尋請華佗醫治不想華佗已往中原去了止有徒弟在吳命其治療其徒曰箭頭有藥毒已入骨須靜養百日方可無虞若怒氣沖激其瘡難治孫策爲人最是性急恨不得即日便愈將息到二十餘日忽聞張紘有使者自許昌回策喚問之

 

각설, 손책이 상처를 입고 돌아와 사람을 보내 화타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했다. 뜻밖에 화타는 중원으로 가고 없고 다만 제자가 오 땅에 있어서 치료를 명했다. 그 제자가 말하기를,

 

화살 끝에 독이 발라져 뼛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반드시 백일간 정양해야 걱정없겠습니다. 만약 노기가 치솟으면 상처가 낫기 어렵습니다.”

 

했다. 손책의 사람됨이 몹시 성급해서 즉시 바로 낫지 않는 것을 짜증냈다. 스무날 남짓 쉬었는데 문득 장굉이 허창에서 사자를 보내 왔다는 말을 듣고, 손책이 불러 물었다.

 

使者曰曹操甚懼主公其帳下謀士亦俱敬服惟有郭嘉不服策曰郭嘉曾有何說使者不敢言策怒固問之使者只得從實告曰郭嘉曾對曹操言主公不足懼也輕而無備性急少謀乃匹夫之勇耳他日必死於小人之手策聞言大怒曰匹夫安敢料吾吾誓取許昌遂不待瘡愈便欲商議出兵張昭諫曰醫者戒主公百日休動今何因一時之忿自輕萬金之軀

 

사자가 말하기를,

 

조조가 주공을 몹시 두려워하고 부하 모사들 역시 (주공을) 존경합니다. 다만 곽가가 굽히지 않습니다.”

 

고 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곽가가 뭐라 하던가?”

 

했다. 사자가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손책이 노해 다그치자 어쩌지 못해 사실을 고하기를,

 

곽가가 일찍이 조조에게, ‘주공께서 손책을 두려워할 게 못 됩니다, 그는 가벼워 대비가 없고 성급해 꾀가 모자라니 필부의 용기일 뿐이라 언젠가 반드시 하찮은 자들에게 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니, 손책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필부가 어찌 나를 헤아리겠느냐! 내 맹세코 허창을 취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하여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지 않고 출병을 상의하려고 했다. 장소가 간하기를,

 

의사가 주공에게 백일간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어찌 한때의 분노로써 만금 같은 몸을 함부로 하시겠습니까?”

 

하였다.

 

正話間忽報袁紹遣使陳震至策喚入問之震具言袁紹欲結東吳爲外應共攻曹操策大喜即日會諸將於城樓上設宴款待陳震飲酒之間忽見諸將互相耳語紛紛下樓策怪問何故左右曰有於神仙者今從樓下過諸將欲往拜之耳策起身憑欄觀之見一道人身披鶴氅手攜藜杖立於當道百姓俱焚香伏道而拜策怒曰是何妖人快與我擒來左右告曰此人姓於名吉寓居東方往來吳會普施符水救人萬病無有不驗當世呼爲神仙未可輕瀆策愈怒喝令速速擒來違者斬

 

이야기하는 중에 문득 원소가 보낸 사자 진진이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손책이 불러들여 물으니, 진진이 원소는 동오와 맺어 바깥에서 응원이 되어 함께 조조를 치려 한다고 자세히 말했다. 손책이 크게 기뻐하며 그날 바로 장수들을 성루 위에 모아 연회를 베풀고 진진을 환대했다. 술을 마시는 사이에 문득 장수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고 분분히 성루를 내려가는 것을 보고, 손책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다. 좌우에서 말하기를,

 

우 신선이란 분이 지금 성루 아래로 지나가니 장수들이 가서 절하려고 그럽니다.”

 

하였다. 손책이 일어나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았다. 어떤 도인이 학창(학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길에 서 있고, 백성들이 모두 향을 사르고 길에 엎드려 절했다. 손책이 노하여 말하기를,

 

어떤 요사한 놈인가? 어서 내게 잡아오너라!”

 

하니, 좌우에서 고하기를,

 

이분의 성은 우이고 이름은 길입니다. 동쪽에 사는데 오회 땅을 오갑니다. 널리 부적 태운 물을 베풀어 사람들의 온갖 병을 치료하여 낫지 않는 게 없습니다. 세상에서 신선이라 부르니 함부로 모독할 수 없습니다.”

 

했다. 손책이 더욱 노해 소리질러 명령하기를,

 

빨리 잡아와라! 어기는 자는 참하겠다!”

 

라고 하였다.

 

左右不得已只得下樓擁於吉至樓上策叱曰狂道怎敢煽惑人心於吉曰貧道乃琅琊宮道士順帝時曾入山采藥得神書於陽曲泉水上號曰太平青領道》,凡百餘卷皆治人疾病方術貧道得之惟務代天宣化普救萬人未曾取人毫厘之物安得煽惑人心策曰汝毫不取人衣服飲食從何而得汝即黃巾張角之流今若不誅必爲後患叱左右斬之張昭諫曰於道人在江東數十年並無過犯不可殺害策曰此等妖人吾殺之何異屠豬狗

 

좌우에서 어쩌지 못하여 성루를 내려가 우길을 묶어 성루에 데려왔다. 손책이 꾸짖기를,

 

미친 도사놈아! 어찌 감히 인심을 현혹하느냐!”

 

하니, 우길이 말하기를,

 

저는 바로 낭야궁의 도사입니다. 순제 시절에 일찍이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양곡 샘물 가에서 신령스런 책을 얻었습니다. 책 이름은 <태평천령도>인데, 백 권 남짓 모두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술이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얻어 오로지 하늘을 대신해 널리 교화하고 만백성을 구제하였습니다. 아직 털끝만치 백성들의 재물을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인심을 현혹했다고 하십니까?”

 

하였다. 손책이 말하기를,

 

털끝도 취하지 않았다면 옷이며 음식을 어디서 얻었느냐? 네놈이 바로 황건적 장각의 무리구나. 지금 처형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후환이 되겠다!”

 

하고, 좌우에게 소리쳐 참하라 하니, 장소가 간하기를,

 

우 도인은 강동에 수십 년 살아도 아무 잘못이 없어 죽일 수 없습니다.”

 

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런 요사한 놈을 내가 죽인들 개돼지를 죽이는 것과 뭣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衆官皆苦諫陳震亦勸策怒未息命且囚於獄中衆官俱散陳震自歸館驛安歇孫策歸府早有內侍傳說此事與策母吳太夫人知道夫人喚孫策入後堂謂曰吾聞汝將於神仙下於縲絏此人多曾醫人疾病軍民敬仰不可加害策曰此乃妖人能以妖術惑衆不可不除夫人再三勸解策曰母親勿聽外人妄言兒自有區處乃出喚獄吏取於吉來問原來獄吏皆敬信於吉吉在獄中時盡去其枷鎖及策喚取方帶枷鎖而出

 

관리들 모두 애써 간언하고 진진도 역시 권했다. 손책의 노여움이 삭지 않아서 우길을 옥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관리들이 모두 돌아가고 진진도 객사에 돌아가 쉬었다. 손책이 부중으로 돌아가자, 이미 어느 내시가 이 일을 손책의 어머니 오태부인에게 전해 알게 되었다. 오태부인이 손책을 후당으로 불러들여 말하기를,

 

내가 듣자니 네가 우 신선을 하옥했더구나. 이분은 일찍이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군민들이 존경하고 우러르니 해쳐서는 안 된다.”

 

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그자는 요사한 놈입니다. 요술로 사람들을 현혹해 없애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했다. 오태부인이 재삼 풀어주라 권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바깥 사람의 망언을 듣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 처리하겠습니다.”

 

했다. 그리고 나가더니 옥리를 불러 우길을 문초하게 끌고오라고 했다. 원래 옥리들은 모두 우길을 존경하고 믿어서 옥중에서 우길의 칼과 족쇄를 모두 풀어놓았다. 손책이 불러서야 칼과 자물쇠를 채워서 나왔다.

 

策訪知大怒痛責獄吏仍將於吉械系下獄張昭等數十人連名作狀拜求孫策乞保於神仙策曰公等皆讀書人何不達理昔交州刺史張津聽信邪教鼓瑟焚香常以紅帕裹頭自稱可助出軍之威後竟爲敵軍所殺此等事甚無益諸君自未悟耳吾欲殺於吉正思禁邪覺迷也呂範曰某素知於道人能祈風禱雨方今天旱何不令其祈雨以贖罪策曰吾且看此妖人若何遂命於獄中取出於吉開其枷鎖令登壇求雨

 

손책이 그걸 알고 크게 노하여 옥리를 매우 질책하고 다시 우길에게 형구를 채워 하옥했다. 장소 등 수십 인이 연명장을 돌려 손책에게 우 신선을 보호해 주기를 간청했다. 손책이 말하기를,

 

그대들 모두 독서하는 사람들인데 어찌 이치를 모르오? 예전에 교주 자사 장진이 사교를 믿어 비파를 연주하고 향을 사르며 늘 붉은 머리띠를 둘러 스스로 칭하기를 출전하는 위세를 돋운다 하더니 그뒤 결국 적군들에게 죽고 말았소. 이런 일은 정말 무익한데 여러분들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오. 내가 우길을 죽이려 하는 것은 바로 사악한 종교를 금하고 미신을 깨기 위해서요.”

 

했다. 여범이 말하기를,

 

제가 평소 알기에 우 도사께서 비바람을 빌 수 있습니다. 지금 가뭄인데 그에게 명하여 비를 빌어서 죄를 씻게 해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내가 그 요사한 놈이 어찌하나 보겠소.”

 

하고, 옥중에서 우길을 끌고 나와 칼과 족쇄를 풀고 단에 올라 비를 빌라고 명령했다.

 

吉領命即沐浴更衣取繩自縛於烈日之中百姓觀者填街塞巷於吉謂衆人曰吾求三尺甘霖以救萬民然我終不免一死衆人曰若有靈驗主公必然敬服於吉曰氣數至此恐不能逃少頃孫策親至壇中下令若午時無雨即焚死於吉先令人堆積幹柴伺候將及午時狂風驟起風過處四下陰雲漸合策曰時已近午空有陰雲而無甘雨正是妖人叱左右將於吉扛上柴堆四下舉火焰隨風起忽見黑煙一道沖上空中一聲響亮雷電齊發大雨如注頃刻之間街市成河溪澗皆滿足有三尺甘雨於吉仰臥於柴堆之上大喝一聲雲收雨住複見太陽

 

우길이 명을 받고 즉시 목욕하여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햇볕 아래 스스로 밧줄로 결박했다. 구경하는 백성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길이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3척의 단비를 빌어서 만백성을 구원하겠지만 나는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겠소.”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만약 영험을 본다면 주공께서 틀림없이 공경하고 감복할 것입니다.”

 

했다. 우길이 말하기를,

 

운수가 이러하니 아무래도 벗어나기 어렵겠소.”

 

했다. 잠시 후 손책이 몸소 제단에 이르러 명령하기를,

 

만약 정오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즉시 우길을 불태워라.”

 

라고 했다. 먼저 사람들을 시켜 장작을 쌓아놓고 기다리게 했다. 오시가 되려고 하니 광풍이 갑자기 일어났다. 바람이 지나간 곳에 사방에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미 오시에 가까운데 헛되이 먹구름만 끼고 단비는 오지 않으니 정말 요사한 놈이다!”

 

하고, 좌우를 꾸짖어 우길을 장작더미 위에 들어올리게 했다. 사방에 불을 붙여서 불꽃이 바람을 따라 치솟았다. 갑자기 한줄기 검은 연기가 공중에 가득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천둥번개가 일제히 쳐서 큰비가 퍼붓는다. 순식간에 거리가 강을 이루고 냇물들이 모두 가득 차서 족히 3척 단비가 되었다. 우길이 장작더미 위에 누워서 크게 소리지르자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멎어서 다시 태양이 보였다.

 

於是衆官及百姓共將於吉扶下柴堆解去繩索再拜稱謝孫策見官民俱羅拜於水中不顧衣服乃勃然大怒叱曰晴雨乃天地之定數妖人偶乘其便你等何得如此惑亂掣寶劍令左右速斬於吉衆官力諫策怒曰爾等皆欲從於吉造反耶衆官乃不敢複言策叱武士將於吉一刀斬頭落地只見一道青氣投東北去了策命將其屍號令於市以正妖妄之罪

 

이에 관리와 백성들이 함께 우길을 장작더미에서 아래로 부축해 내려 결박을 풀고 거듭 절하며 칭송했다. 손책은 관민들이 모두 물속에 둘러서서 절하며 옷이 젖는 걸 돌보지 않는 것을 보고, 발끈해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날이 맑거나 비오거나 모두 천지의 법칙이다. 요사한 놈이 어쩌다 맞춘 걸 너희는 어찌 이다지 어지럽게 미혹하느냐!”

 

하고, 보검을 뽑아 좌우에게 명하여 우길을 참하라고 했다. 관리들이 힘껏 간했지만, 손책이 성을 내어 말하기를,

 

너희들이 모두 우길을 따라 반역할테냐!”

 

하니, 관리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했다. 손책이 무사를 꾸짖어 우길의 머리를 한칼에 베어 땅에 떨어뜨렸다. 다만 한줄기 푸른 기운이 동북쪽으로 가버리는 것을 보았다. 손책이 명하여 그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보이게 하여, 요망한 죄를 바로잡고자 했다.

 

是夜風雨交作及曉不見了於吉屍首守屍軍士報知孫策策怒欲殺守屍軍士忽見一人從堂前徐步而來視之卻是於吉策大怒正欲拔劍斫之忽然昏倒於地左右急救入臥內半晌方蘇吳太夫人來視疾謂策曰吾兒屈殺神仙故招此禍策笑曰兒自幼隨父出征殺人如麻何曾有爲禍之理今殺妖人正絕大禍安得反爲我禍夫人曰因汝不信以致如此今可作好事以禳之策曰吾命在天妖人決不能爲禍何必禳耶夫人料勸不信乃自令左右暗修善事禳解

 

그날 밤 비바람이 섞어 치고 새벽에 이르러 우길의 시체가 사라졌다. 시체를 지키던 군사가 손책에게 알렸다. 손책이 노하여 시체를 지킨 군사를 죽이려 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당 앞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오는 걸 바라보니 바로 우길이었다. 손책이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 베려다 문득 혼절해 바닥에 쓰러졌다. 좌우에서 급히 구하여 안으로 들여 눕혔더니 잠시 뒤에 깨어났다. 오태부인이 들어와 병세를 살펴보고 손책에게 말하기를,

 

네가 신선을 억지로 죽여 이런 재앙을 불렀구나.”

 

하니, 손책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출정해서 사람 죽이기를 삼 자르듯 하였지만, 일찍이 화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 요망한 놈을 죽여 바로 큰 재앙을 끊었는데 어찌 도리어 제게 재앙이겠습니까?”

 

했다. 오태부인이 말하기를,

 

네가 믿지 않아 이렇게 되었구나. 지금 자선을 베풀어서 재앙을 풀어달라고 기도를 해라.”

 

하니, 손책이 말하기를,

 

제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어서 요망한 놈이 결코 재앙을 줄 수 없는데 하필 액막이 기도라니요?”

 

했다. 오태부인이 권해도 믿지 않음을 헤아리고 직접 좌우에게 명하여 몰래 재앙을 풀어달라고 신에게 공양을 했다.

 

是夜二更策臥於內宅忽然陰風驟起燈滅而複明燈影之下見於吉立於床前策大喝曰吾平生誓誅妖妄以靖天下汝既爲陰鬼何敢近我取床頭劍擲之忽然不見吳太夫人聞之轉生憂悶策乃扶病強行以寬母心母謂策曰聖人雲鬼神之爲德其盛矣乎又雲禱爾於上下神祇鬼神之事不可不信汝屈殺於先生豈無報應吾已令人設醮於郡之玉清觀內汝可親往拜禱自然安妥

 

이날밤 2(열시쯤)에 손책이 안방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스산한 바람이 몰아쳐서 등불이 커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등불 그림자 아래 우길이 상 앞에 서 있었다. 손책이 크게 고함치기를,

 

내가 평생 요망한 것들을 처단하여 천하를 평정할 것을 맹세했다! 네가 이미 귀신이 되었는데 어찌 감히 내게 나타났느냐!”

 

하고, 침대머리의 칼을 집어던지자 갑자기 사라졌다. 오태부인이 그 일을 전해 듣고 무척 근심했다. 이에 손책이 병든 몸을 겨우 이끌고 가서 어머니의 마음을 풀려고 했다. 어머니가 손책에게 말하기를,

 

성인(공자)께서, ‘귀신이 가진 덕은 참으로 크구나!’라고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위아래 천지신명께 기도한다.’라고 했으니, 귀신이 일은 믿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우 선생을 억지로 죽여 어찌 보응(인과응보)이 없겠느냐? 내가 벌써 사람을 시켜서 고을의 옥청관에 제단을 쌓았다. 네가 직접 가서 기도하면 절로 평온해질 것이다.”

 

라고 했다.

 

策不敢違母命只得勉強乘轎至玉清觀道士接入請策焚香策焚香而不謝忽香爐中煙起不散結成一座華蓋上面端坐著於吉策怒唾罵之走離殿宇又見於吉立於殿門首怒目視策策顧左右曰汝等見妖鬼否左右皆雲未見策愈怒拔佩劍望於吉擲去一人中劍而倒衆視之乃前日動手殺於吉之小卒被劍斫入腦袋七竅流血而死策命扛出葬之

 

손책이 어머니의 명을 어길 수 없어서 부득이 가마를 타고 옥청관에 이르렀다. 도사가 맞아들여 손책에게 분향을 청했다. 손책이 분향을 했지만 사죄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흩어지지 않아서 마치 수레 위의 일산 같고 그위에 우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손책이 노하여 침을 뱉고 욕을 했다. 그 건물을 급히 빠져나오니 또 우길이 문앞에 서서 성난 눈으로 손책을 노려보았다. 손책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에게도 요괴가 보이느냐? ”

 

하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손책이 더욱 노하여 칼을 뽑아 우길을 바라보고 던졌지만 다른 사람이 칼에 맞아 쓰러졌다. 모두 바라보니 전날에 우길을 처형하는 것을 도운 졸병이었다. 칼이 머리를 쪼개고 뇌 속으로 들어가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다. 손책이 명하여 메고 나가서 장례지내게 했다.

 

比及出觀又見於吉走入觀門來策曰此觀亦藏妖之所也遂坐於觀前命武士五百人拆毀之武士方上屋揭瓦卻見於吉立於屋上飛瓦擲地策大怒傳令逐出本觀道士放火燒毀殿宇火起處又見於吉立於火光之中策怒歸府又見於吉立於府門前策乃不入府隨點起三軍出城外下寨傳喚衆將商議欲起兵助袁紹夾攻曹操衆將俱曰主公玉體違和未可輕動且待平愈出兵未遲

 

옥청관을 나서자 또 우길이 옥청관 문으로 달려 들어왔다. 손책이 말하기를,

 

이 옥청관에 요괴를 감추어 두었구나!”

 

하고, 옥청관 앞에 앉아서 무사 오백명에게 그곳을 부숴버리라 고 명했다. 무사들이 지붕에 올라 기왓장을 뜯어내려는데 우길이 지붕 위에 나타나서 기왓장을 땅으로 던져 날렸다. 손책이 크게 노해 옥청관 도사들을 내쫓고 건물을 불살라 없애게 했다. 불길이 치솟자 다시 우길이 불꽃속에서 나타났다. 손책이 노하여 부중으로 돌아가도 우길이 또 부문 앞에 서 있었다. 이에 손책이 부로 들어가지 않고 삼군을 점호해 성밖으로 나가 주둔했다. 장수들을 불러모아, 출병하여 원소를 도와 조조를 칠 걸 상의했다. 장수들 모두 말하기를,

 

주공의 옥체가 편치 않아서 아직 함부로 출병할 수 없습니다. 다 낫기를 기다려서 출병해도 늦지 않습니다.”

 

하였다.

 

是夜孫策宿於寨內又見於吉披發而來策於帳中叱喝不絕次日吳太夫人傳命召策回府策乃歸見其母夫人見策形容憔悴泣曰兒失形矣策即引鏡自照果見形容十分瘦損不覺失驚顧左右曰吾奈何憔悴至此耶言未已忽見於吉立於鏡中策拍鏡大叫一聲金瘡迸裂昏絕於地夫人令扶入臥內須臾蘇醒自歎曰吾不能複生矣

 

그날 밤 손책이 영채 안에서 자는데 다시 우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가왔다. 손책이 장막 안에서 쉼없이 꾸짖었다. 이튿날 오태부인이 명하여 손책을 부중으로 불렀다. 손책이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니, 오태부인이 손책의 형색이 초췌함을 보고, 울며 말하기를,

 

네 모습이 형편없구나!”

 

하였다. 손책이 즉시 거울을 보니, 과연 형색이 망가져 수척해서 저도 모르게 놀라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다지도 초췌한가?”

 

하고, 미처 말이 끝나기 전에 문득 우길이 거울 안에 섰다. 손책이 거울을 부수고, 크게 비명을 지르자 금창들이 한꺼번에 터져 혼절해 쓰러졌다. 오태부인이 손책을 안으로 들여 눕히니, 잠시 뒤 깨어나 자탄하기를,

 

내가 되살아날 수가 없겠구나!”

 

하였다.

 

隨召張昭等諸人及弟孫權至臥榻前囑付曰天下方亂以吳越之衆三江之固大可有爲子布等幸善相吾弟乃取印綬與孫權曰若舉江東之衆決機於兩陣之間與天下爭衡卿不如我舉賢任能使各盡力以保江東我不如卿卿宜念父兄創業之艱難善自圖之權大哭拜受印綬策告母曰兒天年已盡不能奉慈母今將印綬付弟望母朝夕訓之父兄舊人慎勿輕怠母哭曰恐汝弟年幼不能任大事當複如何

 

그리고 이어서 장소 등 신하들과 아우 손권을 병석으로 불러 부탁하기를,

 

천하가 지금 어지럽지만 오월 땅의 사람들과 삼강의 확고한 기반으로 대업을 이룰 만하오. 자포(장소)와 여러분은 부디 제 아우 손권을 잘 보필해 주시기 바라오.”

 

하고, 인수를 손권에게 주며 말하기를,

 

강동의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양진 사이에서 기회를 결단하여 천하의 승부를 다투는 것은 그대가 나보다 못하오. 현명한 인재를 뽑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각각 힘을 다하여 강동을 지키는 것은 내가 그대보다 못하오. 그대는 마땅히 아버지와 형이 창업한 어려움을 생각하여 부디 스스로 도모하시오.”

 

하였다. 손권이 크게 울며 절하여 인수를 받았다. 손책이 어머니에게 고하기를,

 

제가 수명이 이미 다하여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수를 아우에게 넘겨주었으니 어머니께서 아침저녁으로 가르쳐주십시오. 부형과 옛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을 부디 소홀히 대해선 안 됩니다.”

 

했다. 어머니가 울며 말하기를,

 

네 아우가 나이가 어려서 대사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인데 어떻게 해야겠느냐?”

 

했다.

 

策曰弟才勝兒十倍足當大任倘內事不決可問張昭外事不決可問周瑜恨周瑜不在此不得面囑之也又喚諸弟囑曰吾死之後汝等並輔仲謀宗族中敢有生異心者衆共誅之骨肉爲逆不得入祖墳安葬諸弟泣受命又喚妻喬夫人謂曰吾與汝不幸中途相分汝須孝養尊姑早晚汝妹入見可囑其轉致周郎盡心輔佐吾弟休負我平日相知之雅言訖瞑目而逝年止二十六歲

 

손책이 말하기를,

 

아우의 재주가 저보다 열배나 나아서 대임을 맡을 만합니다. 만약 내부의 일을 결단할 수 없으면 장소에게 묻고, 외부의 일을 결단할 수 없으면 주유에게 물어야 합니다. 주유가 여기에 없어 얼굴을 맞대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하고, 또 여러 아우들을 불러 부탁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너희들은 함께 중모(손권의 자)를 보필해라. 종족 가운데 감히 다른 마음을 가지는 자가 생기면 모두 함께 처단해라. 골육이 반역하면 조상의 무덤에 안장할 수 없다.”

 

고 했다. 아우들이 울며 명을 받들었다. 또 아내 교부인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그대와 불행히 중도에서 헤어지오. 그대는 반드시 시어머니를 받들어 효도를 다하시오. 조만간 처제가 들어오면 주랑(주유)에게 보내 그가 온맘으로 내 아우를 보필하게 하고, 나와 평소 알고 지낸 친분을 저버리지 않게 하시오.”

 

하였다. 손책이 말을 마치더니 눈을 감고 죽었다. 나이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다.

 

後人有詩贊曰

 

獨戰東南地人稱小霸王

運籌如虎踞決策似鷹揚

威鎮三江靖名聞四海香

臨終遺大事專意屬周郎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찬양해 이르기를,

 

홀로 동남 땅에서 싸워서, 사람들이 소패왕이라 불렀고,

계책은 호랑이가 웅크린 듯하고, 결단은 매처럼 덮쳤네.

위세는 삼강 땅을 평정하고, 이름은 사해에 퍼졌네.

대사를 남기고 죽으며, 오로지 주랑에게 부탁했네.”

 

라고 했다.

 

孫策既死孫權哭倒於床前張昭曰此非將軍哭時也宜一面治喪事一面理軍國大事權乃收淚張昭令孫靜理會喪事請孫權出堂受衆文武謁賀孫權生得方頤大口碧眼紫髯昔漢使劉琬入吳見孫家諸昆仲因語人曰吾遍觀孫氏兄弟雖各才氣秀達然皆祿祚不終惟仲謀形貌奇偉骨格非常乃大貴之表又享高壽衆皆不及也

 

손책이 죽자 손권이 침상 앞에서 울며 쓰러졌다. 장소가 말하기를,

 

지금 장군께서 우실 때가 아닙니다. 장례 준비를 하는 한편으로 나라와 군사의 큰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하니, 이에 손권이 눈물을 거두었다. 장소가 손정에게 장례를 준비하게 하고 손권에게 청하여 밖으로 나가서 문무 관리들의 하례를 받게 했다. 손권은 사각턱에 큰 입과 푸룬 눈에 자줏빛 수염을 타고 났다. 예전에 한나라 사신 유완이 오 땅에 들어와서 손씨 집안의 형제들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손씨 형제를 두루 보았는데 비록 각각 재기가 뛰어나지만 모두 복록과 수명을 다하지는 못하겠소. 오직 중모(손권)가 생김새가 남달리 웅위하고 골격이 비상하니 크게 귀해질 징표이고 장수를 누려서 다른 형제들이 미치지 못할 것이오.”

 

하였다.

 

且說當時孫權承孫策遺命掌江東之事經理未定人報周瑜自巴丘提兵回吳權曰公瑾已回吾無憂矣原來周瑜守禦巴丘聞知孫策中箭被傷因此回來問候將至吳郡聞策已亡故星夜來奔喪當下周瑜哭拜於孫策靈柩之前吳太夫人出以遺囑之語告瑜瑜拜伏於地曰敢不效犬馬之力繼之以死

 

한편, 그때부터 손권이 손책의 유명을 받들어 강동을 장악했다. 아직 관리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주유에게 보고하여 주유가 파구 땅으로부터 병력을 거느리고 오 땅으로 돌아왔다. 손권이 말하기를,

 

공근(주유의 자)이 돌아오니 내가 이제 걱정이 없게 됐소.”

 

했다. 원래 주유는 파구 땅을 지키다가 손책이 화살을 맞아 다쳤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문병하러 돌아오고 있었다. 오군에 이를 즈음에 손책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문상하러 밤낮으로 달려왔다. 오자마자 주유가 손책의 널 앞에서 울며 절했다. 오태부인이 나와서 손책이 남긴 부탁의 말을 주유에게 전했다. 주유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하기를,

 

감히 견마지로(犬馬之勞)의 효과가 없으면 그를 따라 죽겠습니다!”

 

하였다.

 

少頃孫權入周瑜拜見畢權曰願公無忘先兄遺命瑜頓首曰願以肝腦塗地報知己之恩權曰今承父兄之業將何策以守之瑜曰自古得人者昌失人者亡爲今之計須求高明遠見之人爲輔然後江東可定也權曰先兄遺言內事托子布外事全賴公瑾瑜曰子布賢達之士足當大任瑜不才恐負倚托之重願薦一人以輔將軍

 

잠시 뒤에 손권이 들어왔다. 주유가 인사를 마치자 손권이 말하기를,

 

공께서 형의 유명을 잊지 마시기 바라오.”

 

하니, 주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간과 뇌로 길을 바르더라도 저를 알아주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였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금 부형의 유업을 이어받았으니 장차 무슨 계책으로 지켜야겠소?”

 

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예로부터 인재를 얻으면 번창하고, 인재를 잃으면 망한다고 한 것을 지금의 계책으로 삼아야 합니다. 고명하고 식견이 원대한 사람을 구하여 보필하게 하면 강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손권이 말하기를,

 

돌아가신 형께서 유언하기를, 안의 일은 자포에게 맡기고 밖의 일은 모두 공근에게 의지하라 하셨소.”

 

하니, 주유가 말하기를,

 

자포는 현명하고 통달하여 큰 임무를 맡길 만합니다. 저는 재주가 없어 맡기신 중임을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이라 한 사람을 천거하여 장군을 보필하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權問何人瑜曰姓魯名肅字子敬臨淮東川人也此人胸懷韜略腹隱機謀早年喪父事母至孝其家極富嘗散財以濟貧乏瑜爲居巢長之時將數百人過臨淮因乏糧聞魯肅家有兩囷米各三千斛因往求助肅即指一囷相贈其慷慨如此平生好擊劍騎射寓居曲阿祖母亡還葬東城其友劉子揚欲約彼往巢湖投鄭寶肅尚躊躇未往今主公可速召之權大喜即命周瑜往聘

 

손권이 누구냐고 물으니 주유가 말하기를,

 

성은 노이고 이름은 숙이며 자는 자경입니다. 임회군 동천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가슴에 육도삼략을 품고 뱃속에 계략을 숨기고 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십니다. 그 집안이 매우 부유하여 일찍이 재산을 풀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제가 거소 땅의 현령이었을 때 수백인을 거느리고 임회 땅을 지나가다가 식량이 모자랐습니다. 노숙의 집안에 곳간이 둘인데 각각 식량이 삼천 곡이라 전해 듣고 도와달라고 찾아갔습니다. 노숙이 즉시 곳간 하나를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의 의기로움이 이와 같았습니다. 평소에 검술과 말 타고 활쏘기를 즐기며 곡아에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성 땅으로 무덤을 옮겼습니다. 그의 친구 유자양이 그를 데리고 소호의 정보에게 넘어가려 했으나, 노숙이 주저하며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공께서 어서 불러와야 합니다.”

 

하니, 손권이 크게 기뻐하고 즉시 주유에게 초빙하라고 했다.

 

瑜奉命親往見肅敘禮畢具道孫權相慕之意肅曰近劉子揚約某往巢湖某將就之瑜曰昔馬援對光武雲當今之世非但君擇臣臣亦擇君今吾孫將軍親賢禮士納奇錄異世所罕有足下不須他計只同我往投東吳爲是肅從其言遂同周瑜來見孫權權甚敬之與之談論終日不倦

 

주유가 명을 받아 몸소 가서 노숙을 만나 인사를 마치고, 손권이 그를 그리워하는 뜻을 두루 이야기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요새 유자양이 저와 함께 소호 땅으로 가자고 하여 제가 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했다. 주유가 말하기를,

 

예전에 마원이 광무제에게 이르기를,‘지금 세상에서는 임금이 신하를 고를 뿐만 아니라 신하 역시 임금을 고릅니다.’라고 했소. 지금 내가 모시는 손 장군께서 현명한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선비들을 예우하며 비상한 사람들을 채용하는데 이것은 세상에 드문 일입니다. 그대는 다른 계책을 따르지 마시고 나와 함께 동오로 가는 것이 옳습니다.”

 

했다. 노숙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주유와 함께 손권을 찾아가 만났다. 손권이 매우 공경하며 그와 함께 담론하여 하루종일 지루한 줄을 몰랐다.

 

一日衆官皆散權留魯肅共飲至晚同榻抵足而臥夜半權問肅曰方今漢室傾危四方紛擾孤承父兄餘業思爲桓文之事君將何以教我肅曰昔漢高祖欲尊事義帝而不獲者以項羽爲害也今之曹操可比項羽將軍何由得爲桓文乎肅竊料漢室不可複興曹操不可卒除爲將軍計惟有鼎足江東以觀天下之釁今乘北方多務剿除黃祖進伐劉表竟長江所極而據守之然後建號帝王以圖天下此高祖之業也

 

하루는 관리들이 모두 돌아가고 손권이 노숙을 머무르게하여 함께 술을 마시며 밤이 되자 같은 침상에서 누워 잤다. 한밤에 손권이 노숙에게 묻기를,

 

지금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 위태롭고 사방이 혼란하오. 나는 부형이 남긴 사업을 이어받아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패업)을 이루려고 생각하는데 그대는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겠소?”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예전에 한나라 고조(유방)께서 의제를 떠받들며 그 자리를 빼앗지 않은 것은 결국 항우가 (의제를) 해칠 것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지금 조조를 항우에 견줄 만한데 장군께서 어떻게 환공이나 문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헤아려보니 한나라 황실을 부흥할 수도, 조조를 금방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장군을 위한 계책은 오로지 강동 땅을 취해 세발 솥 같은 형세로 천하의 분쟁을 살피는 것입니다. 지금 북방이 복잡한 틈에 황조를 제거하고 나아가 유표를 토벌하여 마침내 장강 유역을 점거해 지켜야 합니다. 그뒤 제왕에 즉위해 천하를 도모하는 것, 이것이 고조(유방)의 위업과 같은 것입니다.”

 

했다.

 

權聞言大喜披衣起謝次日厚贈魯肅並將衣服帷帳等物賜肅之母肅又薦一人見孫權此人博學多才事母至孝覆姓諸葛名瑾字子瑜琅琊南陽人也權拜之爲上賓瑾勸權勿通袁紹且順曹操然後乘便圖之權依言乃遣陳震回以書絕袁紹卻說曹操聞孫策已死欲起兵下江南侍禦史張紘諫曰乘人之喪而伐之既非義舉若其不克棄好成仇不如因而善遇之操然其說乃即奏封孫權爲將軍兼領會稽太守即令張紘爲會稽都尉齎印往江東

 

손권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옷을 갖춰 입고 일어나 사례했다. 다음날 노숙에게 후하게 포상하고 아울러 의복, 휘장 등을 노숙의 어머니에게 내렸다. 노숙이 또 한사람을 천거해 손권을 만나게 했다. 이 사람은 널리 배우고 재주가 많으며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복성으로 성은 제갈이고 이름은 근이며 자는 자유다. 낭야군 남양현 사람이다. 손권이 그를 상객으로 삼았다. 제갈근이 손권에게 원소와 통하지 말고 조조를 따른 뒤에 기회를 봐서 도모하라고 권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진진을 돌려보내며 글을 전하여 원소와 절교했다. 한편, 조조가 손책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강남으로 내려오려 했다. 시어사 장굉이 간하기를,

 

남의 초상을 틈타 정벌하는 것은 의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만약 이기지 못하면 좋은 사이가 원수가 됩니다. 좋게 대우하는 게 낫습니다.”

 

하니, 조조가 그렇게 여겨 곧바로 상주하여 손권을 장군으로 봉하고 아울러 회계 태수를 맡게 했다. 곧 장굉을 회계 도위로 삼아 관인을 갖고 강동으로 보냈다.

 

孫權大喜又得張紘回吳即命與張昭同理政事張紘又薦一人於孫權此人姓顧名雍字元歎乃中郎蔡邕之徒其爲人少言語不飲酒嚴厲正大權以爲丞行太守事自是孫權威震江東深得民心且說陳震回見袁紹具說孫策已亡孫權繼立曹操封之爲將軍結爲外應矣袁紹大怒遂起冀並等處人馬七十餘萬複來攻取許昌正是江南兵革方休息冀北幹戈又複興

 

손권이 크게 기뻐하고 또 장굉이 오 땅으로 돌아오게 되자, 장소와 더불어 정사를 다스리게 했다. 장굉이 다시 한사람을 손권에게 천거했다. 이 사람은 성이 고이고 이름이 옹이며 자는 원탄으로 바로 중랑 채옹의 제자였다. 사람됨이 말수가 적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엄격하고 공명정대했다. 손권이 승(보좌관)으로 임명해 태수의 사무를 (대신) 보게 했다. 이로부터 손권의 위세가 강동 땅을 흔들었고 민심을 크게 얻었다. 한편, 진진이 돌아가 원소를 만나 두루 이야기하기를,

 

손책은 이미 죽었고 손권이 이어받았습니다. 조조가 그를 장군으로 봉하여 바깥에서 응원하게 하였습니다.”

 

하니,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마침내 기주, 청주, 유주, 병주의 인마 70여 만으로 허창을 다시 공격하려고 했다. 이야말로, 강남에서 싸움을 쉬자 기주 북쪽에서 싸움을 다시 일으키네.

 

未知勝負若何且聽下文分解

 

승부가 어찌될 지 모르겠으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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