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봉은사의 가을
1010. 봉은사의 가을
聞禮庭前聽說親, 奉恩寺裏出遊頻. 餘生孤露頭成雪, 此地斜陽淚滿巾. 欲訪前塵無老宿, 秖殘遺墨記壬辰. 躊躇重繞東門柱, 古樹悲風吹向人. |
예를 배우던 뜰 앞에서 선친 말씀 직접 들으니, 봉은사에 자주 가서 공부했노라 하시었네. 부모님 여의고 홀로 남은 이 목숨 머리가 온통 센 채, 바로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노라니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당시의 일 묻고자 해도 연로한 승려가 없고, 그저 임진년이라 쓰인 유묵만 남아 있구나. 머뭇머뭇 동쪽 문 기둥을 자꾸 배회하노라니, 오래된 나무에서 서글픈 바람이 불어오누나. 문례정전청설친, 봉은사리출유빈. 여생고로두성설, 차지사양루만건. 욕방전진무로숙, 지잔유묵기임진. 주저중요동문주, 고수비풍취향인. |
목만중(睦萬中·1727~1810) 선친이 젊은 시절에 봉은사(奉恩寺)에 자주 왕래하며 공부하였는데 절의 누각 동쪽 두 번째 들보의 가장 높은 곳에 성명이 기록되어 있고 아래에 ‘임진년 중추’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헤아려보니 72년 전인데도 묵적이 완연하기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쓰다. [先君子少日數往來肄業於奉恩寺。寺樓東邊第二樑最高處有題名。下方書以壬辰仲秋。計今七十二歲。墨蹟宛然。感泣有述.] 『여와집(餘窩集)』 권5 |
목만중(睦萬中)은 1784년, 58세의 나이에 봉은사(奉恩寺)를 찾아 선친(先親) 목조우(睦祖禹)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가 어릴 적,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젊은 시절 봉은사(奉恩寺)에서 공부했던 시절—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기억은 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추억이 저자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저자는 봉은사(奉恩寺) 경내(境內)를 거닐며,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된 선친의 젊은 시절을 상상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시절의 선친을 그려보려 하지만, 기억 속의 모습으로는 선친의 당년(當年) 모습을 온전히 되살리기 어렵다. 혹시나 그 시절의 선친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지만, 70여 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이는 없다.
그렇게 허망하게 선친을 추억하던 중, 저자의 눈에 띈 것은 72년 전 선친이 남긴 필적(筆跡)이었다. 단순한 성명과 기록일 뿐이지만, 그 이름과 익숙한 글씨체에 저자는 왈칵 반가운 감정을 느낀다. 그 묵적(墨跡)을 보는 순간, 희미해져 가던 선친의 모습이 불현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착각에 빠진다. 임진년(壬辰年) 중추(仲秋)의 환한 달빛 아래, 글을 읽고 있던 젊은 선친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선친이 그곳에 존재했던 사실, 나아가 그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증명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감정 때문에 저자는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한다. 사람은 소중한 존재를 잃으면 처음에는 그와 함께했던 일상적인 공간에서 그를 떠올리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른 기억들이 그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가 떠오르지 않는 공허함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없는 공간에서 그를 떠올리는 일조차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소중했던 존재이기에, 그를 떠올리는 것도 고통이고, 그를 잊어버리는 것도 고통이다.
저자가 봉은사(奉恩寺)에 간 이유도 그러했을 것이다. 선친의 기억을 찾기 위해, 잊혀가는 선친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다. 봉은사(奉恩寺)에는 온통 선친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선친의 묵적(墨跡)을 보았을 때, 저자는 잠시나마 그와 재회한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눈앞에 있는 것은 한 그루 고목(古木)과 저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처연한 바람 한 줄기뿐이었다.
이 모든 감정은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마음을 흔들었다. 옛 사진들을 뒤적이며 선친을 떠올리고, 몇 줄의 글을 끄적이는 것이, 결국 저자가 선친을 기억하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목만중(睦萬中)의 봉은사(奉恩寺)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잃어버린 과거와 소중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내면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