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 혼술[對酒拈白集韻 대주념백집운]
1007. 혼술[對酒拈白集韻 대주념백집운]
頭白窮山裏, 婆娑獨自娛. 淸幽大抵有, 喧閙一齊無. 得酒花相勸, 吟詩鳥共呼. 尤欣北窓下, 日暮枕空壺. |
흰 머리로 깊은 산속 들어앉아, 한가롭게 홀로이 즐거워한다. 이곳은 맑고도 그윽한 곳이라, 세상 시끄러움 전혀 없다네. 술 대하니 꽃이 마시라 권하고, 시 읊으니 새가 함께 지저귀누나. 더욱 흐뭇한 일은 북창 아래서, 저물녘에 빈 술병 베는 거라오. 두백궁산리, 파사독자오. 청유대저유, 훤료일제무. 득주화상권, 음시조공호. 우흔북창하, 일모침공호. |
이진망(李眞望·1672~1737) 술잔을 마주하고 백거이 시집의 운자를 뽑다[對酒拈白集韻] 『도운유집(陶雲遺集)』 책(冊)1 |
어느 궁벽한 산속에 대제학을 지낸 이진망(李眞望)이 살고 있다. 이진망(李眞望)은 세상사에서 벗어나 산수(山水)를 벗 삼아 조용하고 담박한 삶을 즐기며 소요(逍遙)한다. 맑고 그윽한 풍광은 황혼에 접어든 인생에 어울리는 옷과 같고, 시끄러운 세상일은 그가 흰머리처럼 이미 빛을 잃고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이진망(李眞望)에게는 찾아오는 벗(友)이 없다. 혼자 술상을 마주하며 외로울 법도 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꽃들이 웃고 있고 마치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 같다. "자네, 한잔 더 하게나!"라는 꽃들의 무언의 속삭임이 느껴진다. 술을 홀짝이며 시(詩)를 읊으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정겹게 지저귀며 그의 시심(詩心)을 자극한다. 새들의 노래는 마치 이 시에 곡조를 더하는 듯하다.
이진망(李眞望)은 술잔을 들고 시를 읊조리며, 어느덧 저무는 석양(夕陽)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까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황혼 속에서 시(詩)는 점점 쌓여가고, 몸은 술기운에 거나해진다. 이쯤 되면 그는 이미 뿌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다 마셔버린 술병을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진다.
이진망(李眞望)은 자신의 시(詩)에서 호젓하게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을 자주 묘사하는데, 이는 술을 좋아하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의 시를 읽는 이들은 자연스레 미소 짓게 된다. 술을 마시는 정경이 고스란히 시 속에 담겨 있고, 독자는 그 속에서 이진망(李眞望)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맛보게 된다.
세상사에 찌든 우리에게, 이 노인의 고백은 유쾌한 위로가 된다. 꽃이 술을 권하고, 새가 시를 노래하는 산속에서 술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은 자유롭고 한가로운 삶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노인의 하루는 더없이 간단하다. 술 한 잔에 시 한 구절, 그리고 석양까지 함께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사(豪奢)다. 남들이 말하는 "풍류(風流)"란 이 노인에게는 일상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꽃과 새, 술과 시가 함께하는 삶. 이보다 더한 부귀영화가 어디 있겠는가?